Interview 국중범 경기도의원] 상인과 정치인, 하나의 길
2019/01/11 09: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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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국중범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 중앙, 금광1·2, 은행1·2)

상인과 정치인, 하나의 길

국중범 의원의 어릴 적 꿈은 상인이었다. 5세 때 성남에 첫 발을 디딘 국 의원은 성남에서 중원초, 서중, 송림고를 나와 지금은 정치인이 돼 있다. 상인과 정치인. 이 두 단어를 통해 국 의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봤다.

* 상인을 꿈꿨던 신문배달부 소년, 군사독재에 맞서다
  
국중범 의원은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기에 중학교에 들어가선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신문보급소로 달려가 신문 다발을 겨드랑이에 빼곡히 끼고 희망대공원 뒤편 신흥동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제시간에 석간신문을 모두 돌려야하기에 언덕배기에서도 쉬지 못하고 연실 숨을 헐떡거려야만 하는 고된 시간들. 어린 국중범은 과일가게, 정육점, 식당 등에 신문을 돌릴 때면 “나도 커서 상인이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릴 적 꿈은 장사로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두 남동생, 저, 5명이 한 방에서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신문배달 할 때, 장사하시던 분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과일가게를 보면 어린 마음에 과일을 많이 먹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크나큰 전환점이 찾아온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영상을 접한 것이다. TV, 신문에서 보았던 것들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강한 충격과 함께 교과서보다는 사회과학 서적에 몰입하며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영상을 보고 ‘내가 세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지금도 역사적 진실을 계속 바로잡아가고 있어 그 충격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학생 국중범은 1987년 6월 항쟁을 앞두고 ‘고등학생들도 현 시국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몇 고등학교 학생들과 가칭 ‘민주교육추진성남시고등학생연합회’를 결성하고 결전의 날을 준비했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이여! 일어나라!’라는 문구가 적힌 유인물과 대자보를 만들어 학교에 뿌리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교실 책상서랍마다 유인물을 넣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이로 인해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고야 만다. 당시는 서슬이 시퍼런 군사독재 시절이다. 실컷 얻어맞으며 조사를 받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학교에서도 부담이었다. 퇴학이 불가피한 상황.
“당시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님과 장건 장로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퇴학에서 무기정학으로, 무기정학에서 유기정학으로 순차적으로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경찰에 계속 불려 다니며 감시와 관리 감독을 받았습니다.(하하)”

* 현실 저항적인 삶은 시대적, 지역적 배경과 함께 그 끈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생으로 ‘엄청난(?) 사건’을 낸 국 의원은 성인이 된 후 성남을 기반으로 백창우 시인이 대표로 있는 포크그룹 ‘노래마을’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문제였다. 서울에 있는 출판기획사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군대를 갔다 온 후에는 신어림출판사에 편집부 대리로 스카우트돼 과장으로 승진도 했다. 그러던 중 ‘노래마을’에서 공연기획, 음반기획, 출판기획을 맡아줄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노래마을’을 선택했다.
하지만, 요즘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가 말해주듯 1997년 IMF는 레코드사만 비껴갈리 만무했다.
“당시 레코드사는 다 부도가 났습니다. 가수, 연주자, 스튜디오사용료 등 제작비용을 모두 현찰로 지불하고, 유통은 어음으로 처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4집 앨범을 내고 활동하다 99년도에 결국 해산을 하게 됐습니다.”

이참에 어릴 적 꿈인 장사를 하자고 맘을 먹고 중원구 은행시장 바로 밑에 풀무원 내추럴하우스 건강식품 전문점을 냈다. 장사는 아주 잘 됐다. 언제나 마음 한 곳에 상인이란 두 글자를 새겨 놓고 생활해온 덕분이었다.
그러나 2002년, 상인 국중범에겐 새로운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로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는 유시민 전 장관이 100분토론 사회를 그만두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던지는 심정”으로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선언한 것이다. 개혁국민정당의 시작이다. 중원구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12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민주당 당사보다 개혁당 당사를 먼저 방문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탄핵 등 노 대통령 흔들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열린우리당 창당과 개혁당의 발전적 해체가 진행됐습니다.”

개혁당은 민주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원구만 하더라도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월 1만 원 이상의 당비를 내고 적극 참여할 정도였다. 2004년 총선에서 개혁당 출신 김태년 의원이 수정구, 이상락 전 의원이 중원구에서 승리하자, 이상락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실무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뒤 김태년 국회의원실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게 된다.
“김태년 의원이 2008년 낙선을 한 뒤 원외 지역위원장 4년 하시는 동안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2년 재선에 성공한 날 바로 사표를 내고 그만 두었습니다. 10년 했으면 됐다. 이제는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고 싶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성남시에서 최초로 공공갈등조정관을 공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꿔 공모에 참여하게 되었고 성남시 공공갈등조정관으로 활동하게 됐다. 하지만, 대퇴골두무혈성괴사라는 병을 앓게 되면서 3년 반 만에 그만두고 수술을 해야만 했다. 현재는 괜찮아졌지만, 당시에는 다리를 절고 고통이 심해 약을 복용하고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재활치료를 마칠 쯤, 전해철 국회의원이 경기도당 위원장에 당선된 뒤 경기도당 대외협력국장을 했고 이어 대선 준비를 위해 공보와 홍보 강화를 위해 홍보미디어국장을 맡았다. 탄핵정국으로 대선 일정이 앞당겨 지면서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집중했다. 경기도 선대본부 공보팀장으로 대선을 성공리에 치러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합니다. 제 정치적 멘토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단연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유시민의 울부짖음이 계기가 됐습니다. 노무현 정신을 잘 계승할 분이 문재인 현 대통령이라 생각했기에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아내에게 “2018년 지선에 한번 출마하면 안 될까” 운을 뗐다는 국 의원은 “평소 정치라면 펄쩍펄쩍 뛰던 집사람도 이해해주기 시작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도의원에 당선되고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재난, 화재 등으로부터 도민의 안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지난 6개월을 뛰어 다녔다. 2018 행정사무감사도 충실하게 준비해서 열심히 임했다.
“16년 동안 네 분의 국회의원(이상락, 유시민, 김태년, 전해철)과 한 분의 시장(이재명)을 모시며 입법, 행정을 두루두루 거쳤습니다. 그런데 대의기관에 직접 들어가 민의를 정책에 녹아내는 일은 또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많고 도의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변인도 맡았다. 1년 동안은 사람들 많이 만나 의견을 듣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의정활동에 임하고 있다. 만발의 준비를 해 2년차부터 차근차근 풀어낼 요량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성남시청 앞 경기도의회 성남상담소를 많이 이용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현장 중심의 오전 일정을 빠르게 소화하고, 오후에는 상담소에서 민원인 상담과 사무 일을 처리한다.

* “상인의 아들이었고, 저 또한 상인이었고, 정치를 그만두면 상인으로 돌아갈 사람입니다”

상인 출신 국 의원은 성남시상인연합회 자문위원을 맡는 등 소상공인들에 관심이 많다. 이 땅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상인들을 위해 이와 관련된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상인들이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게끔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상인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성남시에는 9천 여 개의 음식점이 있고, 수정, 중원구는 뒷골목까지도 1층은 모두 상가입니다. 재건축과 재개발, 도시재생사업, 취업 등과의 종합적인 연계를 통해 자영업자 비율을 낮춰나가는 전반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 의원의 바람은 명료했다. “도민들이 맡겨준 소임을 열심히 하고 이 소임이 다 하면 상인으로 돌아가 어렸을 때의 꿈을 다시한번 실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좌우명을 묻자, ‘자알’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든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잘 하자”, “잘 해내자”는 생각뿐이다. “나태해진 모습이 보이면 언제든 호되게 질책해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앞으로도 정치인이면 정치인, 상인이면 상인으로 그 누구보다 주어진 소임을 자알 해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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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수 newwjd@emp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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