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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3.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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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위클리]코로나19 상황, 앞으로 1~2주가 고비일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오늘도 검사 중인 의심환자가 3만 5천명인 걸 감안하면 당분간 확진자는 현저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섭다. 그러나 이 사태가 잘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아마 내년 이맘때면 ‘코로나19 감기’처럼 또 하나의 감기 인플루엔자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낙관인가? 그 근거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동안 사스나 메르스를 극복하면서 쌓아둔 우리 의료계의 노하우와 세계최고의 검진인프라, 투명하면서도 차분한 대응능력과 자신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극복한 나라라는 사실을 근거로 말하고 싶다. 물론 합리적 근거는 될 수 없을지라도 감각적 확신은 들지 않는가?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에서 우리 모두가 배웠으면 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사스, 메르스를 겪으면서 학습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에 가장 아쉬웠던 점이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이었다. 공공병실이 모자라 자가 격리 중인 환자가 진단이나 진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대구에서만 벌써 세 사람이 죽었다. 메르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민간병실도 공공의료에 투입될 수 있는 길이 트였다고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의료 인력과 물자도 모자랐다. 이건 감염병 관리에 관한 하드웨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때 대표적 대형민간병원에서 자신의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고 공공병원으로 옮겨 치료해야 했다. 감염병 관련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민간병원 입장에서 보면 감염병 관련시설은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면서 유지비도 비싸다. 거기다 활용도나 특히 경제성이 떨어지는 시설인 것이다. 운영하기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어떤 민간의료기관도 그 처지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민간의료가 감염병 시설을 기피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負의 외부효과’라고 하는 모양이다. 모두 기피하면 공공이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시장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시장실패. 정보의 비대칭 등의 몇 가지 요인이 더해지는 것이지만 아무튼 의료에 관한한 시장은 제한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의료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나는 공공의료의 반대말은 경제학 논리를 따르면 시장의료가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시장으로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공의료는 어떤가? 공공병상 비중은 13%가 안 된다. 공공병원 수는 10%도 안 된다. GDP대비 보건부문 공공지출액 비중은 2.5%로 OECD 최하위이다. 참고로 OECD 평균비중은 5.89%이다(2016년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스 때 활약했던 진주의료원을 폐쇄했고, 10여개의 적십자병원이 문을 닫았다. 대한적십자사는 공공의료의 한계에 따른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스건 메르스건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코로나19에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대응의 아쉬움이다. 감염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감염병이 발생한 지역의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그 위험의 크기와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의료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회적 질병이라는 말을 ‘질병의 당사자가 사회’라는 의미로, 또한 ‘질병의 치료를 사회가 담당한다’라는 의미로 보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치료의 대상이면서 치료를 담당하는 주체가 된다. 질병대응을 매개로 사회가 공동운명체로 묶일 수도 있고, 감염병의 공공성을 분명하게 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대구의 환자를 광주에서 치료하는 감동적인 예에서 감염병이 사회적 질병임이 잘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염병의 위험은 두 측면에서 봐야한다고 얘기한다. 하나는 질병이 갖는 객관적 위험과 또 하나는 대중이 느끼는 위험이다. 그런데 객관적 위험의 크기와 대중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객관적 위험의 크기보다 대중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가 컷을 때 문제가 오히려 심각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는 위험관리의 측면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대중이 느끼는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는 주로 정치와 행정, 그리고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감염병관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객관적 위험과 대중이 느끼는 위험을 같은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그런데 어떤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위험을 필요이상으로 과장하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모든 정보공개가 선인 것처럼 몰고 가는 기초단체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성남에서도 필요 이상의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는데 자제하길 바란다.


코로나19가 사회적 질병이라면 우리는 지금 사회적 질병의 관리방법을 고민하지 못했고 따라서 매우 서툴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감염병 사태 한가운데에서 ‘정치과잉’은 우스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가 이상한 종교를 닮아가고 또 그런 종교는 정치를 찾아다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교주 코스프레를 하고 교주는 정치인 흉내를 내는 듯하다. 이런 사회적 대응으로 사회적 질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바보야 사람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의료야!

 

만약에 앞으로 또 이러한 감염증이 유행한다면 이 두 가지 학습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동근
성남시의료원 이사
전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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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응하기, 두 가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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