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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4.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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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위클리]코로나19 쓰나미가 지구 전체를 휩쓸고 있다. 정치지도자들 중 몇 사람이 코로나의 위력을 ‘그냥 감기’로 무시하려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보리스 존슨 총리는 중환자실에 치료중이고, 트럼프의 뜨악한 표정에서 읽혀지는 실패와 당혹감,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아베총리까지 긴급조치를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선언하면서 모두 고개를 떨궜다. 그놈 참 ‘센 놈’ 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주가가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모양인데, 정상으로 복귀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4.7일자)에서 중요한 것은 확진자 통계가 아니라, 질병이 정상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을 제시, 아직도 정상복귀로의 길이 멀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교수의 말처럼 “이번 싸움은 단거리 육상이 아니고 마라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상복귀의 의미가 이 시국에서는 달라 보인다. 단순한 복귀는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한 복귀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 국면에서 미국과 서구에서 보여준 ‘홉스의 늑대’들에 기반한 철저한 개인주의는 사회적 책임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서구근대철학이 내세웠던 이성적 개별주체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freedom for all)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화. 이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국에서 사회적 개인적 이성이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했던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았는가? 이런 철학과 사회시스템, 경제구조, 문화를 그냥 놔둔 채로의  단순한 복귀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부터의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과학적 합리적 근거는? 이 어마어마한 담론에 거기에다 앞으로 벌어질 미지의 사실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란 무의미한 것이고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키신저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내 생각에 그도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엄청난 담론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황당할 수 있는 얘기를 내놓는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환경교육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에 의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의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다. 믿어지시는가? 기후변화와 신종바이러스의 상관관계 메커니즘은 3가지 모델이 대표적이다. 먼저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이동이다. 예컨대 박쥐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인간과 생활영역이 겹치게 된다. 박쥐는 생리적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가진다. 과학자들은 박쥐의 몸속에 137여 종의 바이러스가 있고 그 중 61종은 인수공통바이러스로 쉽게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다. 사스나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도 박쥐를 통한 전염이 의심되고 있다.


두 번째 모델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모기 같은 절지동물의 확산과 관련된다. 지카바이러스 등의 매개체는 모기인데 온난화로 서식지가 확산되면서 2050년까지 5억 명, 2080년까지 10억 명이 모기 매개 바이러스에 노출될 것으로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발표했단다. 세 번째는 빙하가 녹으면서 갇혀있던 바이러스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델이다. 2002년 북대서양에서 바다표범을 집단 폐사시킨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소위 ‘좀비 바이러스’ 모델인 셈이다.


과학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기후위기 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후변화문제를 세계가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러스와의 공존.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철학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현대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근대철학의 기둥인 개인주체(공동체주체가 아니라)를 전제하고 있다. 이 주체는 모든 개별들이 스스로의 임무를 완성하면 사회는 조화롭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개별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부로부터의 자유!’, 사회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거기에 책임은 매우 옅다.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러면서도 환자의 치료나 관리에서 난맥상을 보인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의료보험체계와 공공의료의 후진성, 빈부격차와 치료격차가 그대로 이어진 사회구조(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감염병 관리를 위한 사회적 대응능력의 취약(감염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우리는 코로나19에서 이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감염병 대응방식마저 시장을 들이대는 천박한 경제구조 등등. 나는 미국의 이번 위기의 바탕에 이러한 철학의 위기, 시스템의 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결국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질병으로서의 감염병과 공존하려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정보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져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사회적 관리가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원칙적으로 코로나19의 생존능력은 14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계산이 선다. 그렇게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인권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중국이 가장 비슷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방향은 그곳을 향해야 한다. 비전을 공유하고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신뢰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단 올림픽문제와 엮이면서 풀기 힘든 함수관계로 문제가 꼬이기 시작 했다.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해서 매일 아사히와 야후 재팬의 뉴스를 살펴보았다. 검색창에 코로나바이러스+통계를 입력하면 일본질본의 공식 통계를 비롯하여 3개 정도의 뉴스가 나오고 나머지 거의 모두는 외국 현황과 관련된 것들만 뜬다. 검사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는 외국 미디어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했다. 검사를 매우 선별적으로(연속 4일 이상 37.5도 이상 유지, 정황증거가 확실, 의사의 요청이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의료체계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라고 했다.

 

정부의 전략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모든 통계보다 국민을 반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희극배우 시무라 켄(志村けん)이 코로나로 죽었다. 이제 코로나19는 통계의 문제에서 현실의 문제로 전회된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3인조 개그그룹의 구로자와 카즈코(黒沢かずこ)라는 배우가 감염되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극작가)가 검사를 받아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그리고 결국 검사를 받고 양성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투고한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통계나 정부발표에 대한 신뢰에 파열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얘기만 듣는 현상을 ‘확증편향’이라 하고 자신의 신념의 스키마에 끼어 넣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편향동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확증편향이 우리사회에서도 매우 심해져서 예컨대 좌파는 다음을, 우파는 네이버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진영논리’라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당과 야당 지지그룹의 영향력이 비슷해서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엔 야당의 진영논리 자체가 매우 취약해서 일국의 진영논리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뢰의 문제는 편향을 넘어서야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핵심엔 잘 준비된 방역기반시설과 메르스에서 학습한 노하우와 훈련,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대응이 절묘하게 맞아 돌아갔다는 것일 게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 대응에 작동할 새로운 기반과 시스템과 철학에 한국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잘 정리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열린 비전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2020.04


하동근
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
(사)환경교육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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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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