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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사건’ 49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해방 이후 첫 도시빈민투쟁”

최태성 역사강사, 은수미 성남시장, 하동근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추진위원장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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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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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위클리]‘광주대단지사건 49주년기념 토크콘서트’가 10일 유튜브 성남TV에 공개됐다. 최태성 역사강사의 진행으로 은수미 성남시장, 하동근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참여해 성남 태동기 도시 빈민들의 삶의 격정과 사건의 배경 그리고 그 터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성남시민과 동시대인들에게 던지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 등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광주대단지사건은 1960년대 청계천 일대에 판자와 천막으로 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일궜던 도시 빈민들로부터 출발한다. 판자촌 정비에 나선 서울시는 1969년 1월 8일 일방적인 철거통보와 함께 기습 철거를 감행했고, 광주대단지로 쫓겨난 사람들은 기반시설, 생계대책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군용천막으로 집을 짓고 황무지를 개척해나갔다.


하지만, 2년 후 약속했던 토지대금이 8배 오르고 세금까지 부과한다는 통지서가 전달되자 주민들은 서울시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하게 된다.


주민들은 1971년 7월 19일 주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택지분양 가격인하와 구호대책을 담은 진정서를 서울시에 제출했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묵살하고 만다. 분노한 5만여 명의 주민들은 8월 10일 투쟁위원회로 전환하고 생존권 보장과 구호대책을 요구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구속됐으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서울시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시위대는 자진 해산했다. 그 후 1973년 7월 1일 광주대단지는 성남시로 승격됐다.


그러나 최소한의 삶의 권리를 주장하던 시민들의 항거는 불법, 폭력으로 매도되고 그들의 명예로운 희생과 상처는 역사 속을 묻혔다. 당시 시위 과정에서 구속된 총 22명의 주민 중 2명은 실형, 19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은 해방 이후 첫 도시빈민투쟁이자 전국 최초의 민권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남시는 2018년 11월 광주대단지사건 구속피해자 면담을 추진하고 2019년 7월 ‘성남시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 2019년 10월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추진위를 구성, 올해 1월 학술연구용역에 착수하는 등 성남시 역사 바로세우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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