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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성남문화원장 “지역민의 6년간 투쟁이 낳은 판교, 판교테크노밸리”

성남의 역사는 50년 아닌, 600년~! 판교역참, 낙생행궁 복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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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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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위클리]50여 년 짧은 역사 속 성남시. 1973년 시로 승격한 성남시는 이제 겨우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다. 한 도시가 태어나 성장하고 아이덴티티를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불과 수십, 수백 킬로만 가면 천년 고도를 만날 수 있는 반만년 역사의 대한민국에서 도시란 곧 세월과 전통을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다. 깊이 녹아든 시간과 그곳에 터 잡은 이들의 뿌리 깊은 동질감 없이는 도시다운 도시로 대접받을 수 없다. 청계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지로 인식되며 떳떳이 드러내기도 겸연쩍던 그 도시가 바로 성남이었다.


광주대단지로 잉태돼 압축된 경제 팽창기에 도시 빈민의 투쟁적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유년기를 보낸 성남시는 시승격 이후 왕성한 에너지로 몸집을 키우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1990년대 말 늦은 출발을 만회라도 하듯 분당신도시를 잉태하며 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현재는 판교신도시와 위례신도시까지, 다른 도시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너른 위용을 갖추었다.


그러는 동안 성남지역에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이를 체계화해 전해주는 일은 이곳에 터 잡은 도시민들이 함께 책임져야 할 소명이 되어갔다. 성남시가 생기고 5년 후인 1978년에 성남문화원이 설립됐다. 막 걸음마를 뗀 성남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이를 체계화한 지 어언 42년이 흘렀다. 성남의 시작부터 그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해온 김대진 성남문화원장(제12·13대)을 만나 기억 속 시간을 더듬어봤다.

‘판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김대진
“주민에 의해, 주민을 위해 건설된 판교... 역사가 기억할 것”


7백여 년 전, 당시 광주와 판교지역에 뿌리를 내린 김대진 원장의 선조들.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판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1922년 세워진 낙생초를 다니던 50년대, 판교에는 변변한 찻길조차 없었다. 지금처럼 판교테크노밸리의 최첨단 고층 건물이 들어설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영화 ‘강남 1970’ 필름을 뒤로 20년쯤 돌리면 상상하기 쉬울 것 같다.

 
지금의 백현동(당시 광주군 낙생면)에서 태어난 김 원장은 “먹을 것이 없어 뒷동산에 올라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메 뿌리를 캐 먹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6.25 전쟁 때는 초등학교가 불에 타 나무 밑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고, 미군들이 학교에 텐트를 쳐줬고, 나중에 건물도 지어줬다고 한다.


집안이 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런히 일하신 어른들 덕분에 신익희 선생이 교명을 지은 양영중에 이어 수원 수성고를 다닐 수 있었다. 대학은 서울산업대학교를 졸업했다. 낙후된 농촌을 살리기 위한 4-H 활동에 참여한 김 원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리더십으로 주변의 신임을 얻어 갔다. 병장 출신으로 예비군 동대장에 발탁돼 6년간 활동했고, 41살에 낙생농협 조합장이 될 수 있었다.  


“성실하게 뛰다 보니 젊은 나이에 8대, 9대 조합장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예대마진이 7~8%라 농협은 승승장구했습니다. 지점 확장 등 농업인들의 권익과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일에 푹 빠져 생활했습니다.”


이 무렵, 판교만 왜 개발이 안 되느냐 하는 여론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개발 규제에 묶여 농지 매매가 힘들었던 당시, 농협에서 대출받아 자식들 학비, 결혼비용을 충당했다. 농협 대출만기가 되어도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강제경매 처분 당해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례도 빈번했다고 한다.


“조합장 시절인 1995년 주민들 의견을 모아 ‘판교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으로 뽑혀 전면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런데 조합장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 원장은 판교개발과 지역민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제도권 정치에 뛰어든다. 1998년 제3대 성남시의원에 출마에 판교개발을 바라는 지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전국 최다 득표율 78%로 당선됐다.


“개발 제한에 묶여 낙후된 집수리도 할 수 없었던 판교 주민들의 개발 욕구가 충만했을 때였습니다. 개발한다고 주민들이 투쟁하니까 외부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딱지와 보상에 눈독을 들이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에게 별의별 음해를 다 당했다고 한다. “딱지와 보상을 노린 이들이 음해성 투서를 많이 했습니다. 판교개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행정기관에서 일정 부분 받아줬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판교개발을 위해 백방으로 뛰던 김 원장은 해외연수를 통해 지금의 판교테크노밸리와 같은 벤처 도시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김 원장은 “주민에 의한, 주민이 만들어낸 판교신도시, 판교테크노밸리라는 점을 역사가 기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뒤늦게나마 ‘김대진 때문에 판교신도시 개발이 잘 진행돼 이렇게 살지, 아니었으면 지금도 농사짓고 있었을 거야’라고 고마워하는 원주민분들을 뵈면 보람을 느낀다”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성남의 역사는 50년이 아닌, 600년”
판교역참, 낙생행궁 복원 추진... 성남의 역사문화 무궁무진!
 


2010년 성남시의회 3선 의원으로 5대 후반기 의장을 역임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김 원장은 2014년 성남문화원 37차 정기총회에서 제12대 원장에 선출되며 7년여 동안 성남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하여 대내외에 알리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성남의 역사는 50년이 아닌 600년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뺏긴 역사 유물은 물론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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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판교역참과 낙생행궁 복원이다.


판교는 옛날 한양에서 광주, 충청, 영남 등지로 가는 길목인 운중천에 있던 널빤지로 만들어진 널다리에서 유래됐다. 판교동행정복지센터 옆에는 2016년 12월 30일 세워진 ‘판교 지명 상징탑’과 김대진 성남문화원장 명의로 그 유래를 새겨 넣은 대리석이 놓여 있다. 왜곡되어 화랑교였던 이 다리는 현재 이름을 찾아 널다리교로 바뀌었다.


“판교는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영남, 호남길이었습니다. 널다리교 판교주막에서 숙식을 하고 말죽거리로 해서 한양에 갔습니다. 사신과 관료들이 머물던 판교역참을 판교동행정복지센터 앞에 복원했으면 좋겠습니다.”

 

600년 전에는 탄천벌에서 훈련하는 군인들 격려차 임금이 내려오시어 머물렀던 행궁이 있었다.

  
한국잡월드 인근 낙생행궁도 복원하자고 했다. 400여 년 전 인조 때 행궁과 낙생장터 등이 폭우에 떠내려간 기록이 있다. 김 원장은 “행궁과 판교역참 복원은 정말 필요한 사업”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 원장은 ‘새해 천제봉행(天祭奉行)’ 행사도 남한산성에서 판교 마당바위로 바꿨다. 소원이 있으면 꼭 이곳에서 빌었다는 전설의 바위로 455평 규모다. 그 밑 동네 이름은 ‘성내미’다. 600년 전 세종 때 아버지 헌릉의 지맥을 보호하기 위해 흙으로 토성을 쌓아 출입을 통제한 데에서 이루어진 마을이 성내미마을이다.


“성남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아는 분들이 이제는 몇 분 안 계십니다. 어느 도시든 도시의 중심은 문화원입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송산 조견, 둔촌 이집, 강정일당 등 성남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훌륭한 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지역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역사문화가 많습니다.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성남시민을 위한 인문학 수요강좌를 비롯해 다양한 강의가 준비돼 있으니 적극 활용해 성남의 역사문화를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김대진 원장은 지역문화 발전과 계승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0월 22일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2020 문화원의 날’ 기념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문화원의 날’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한 230개 지방문화원의 성과를 알리고, 문화원 간 상호교류를 위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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