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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2.01.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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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히고악을 연주하는 모습
라히에게 차는 평화의 약속이며 음악은 평화를 노래하는 역사이다.


중국 운남성 서북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 여강(麗江)은 태양의 무리라는 이름을 가진 라히족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라히족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평화로우며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낯선 이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친구를 반기는 양 기쁘게 맞아줍니다. 해질녘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광장 사방가(四方街)에서는 라히족 사람들과 각국의 이방인들이 같이 어울려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반가움과 서로 만난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라히족에게는 과거 큰 아픔이 있었으며, 그 아픔을 겪게 된 원인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의미로 평화를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옛날 여강에 라히족이 정착할 무렵, 이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검은 물(黑水)에 기대어 살던 ‘검은 라히’와 흰 물(白水)에 기대어 살던 ‘흰 라히’가 일으킨 흑백대전이 그것입니다.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피는 바다를 이루는 문자 그대로 시산혈해를 이루었습니다. 마침내 검은 라히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참혹한 전쟁의 결과 라히족은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많았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이들은 전쟁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하게 되었으며 라히의 문화와 역사는 이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 피어낸 결과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전쟁이든지 모든 싸움을 가장 큰 죄악으로 간주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대지에서 가장 평화로운 문화를 가꾸어 왔던 것이지요. 의복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말이 달라도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의 마음은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역사상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수십만 대군이 여강을 쳐들어왔을 때에 이들은 무기 대신에 악기를 들고 몽골의 대군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평화의 노래는 마침내 몽골군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그들의 땅을 빼앗되 감히 그들의 목숨을 다치게 하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검은 라히와 흰 라히의 큰 전쟁을 치루고 나서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함께 평화를 약속하던 자리에 약속의 신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차’였습니다. 이들에게 차는 평화의 약속이며 공존과 희망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겨울 찬바람이 매서운 새벽 보이차 따뜻하게 우려마시다가 불현듯 제갈공명과 운남의 지도자 맹획이 의형제를 맺은 증표(石鼓)가 있는 여강 석고진을 방문했을 때 가녀린 손으로 금(琴)을 연주하며 가냘픈 목소리로 산파양(山坡羊) 등의 노래를 들려주던 여인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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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기행 - 운남성 여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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