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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2.12.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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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에 모란동이 없는 내력 ②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로 시작한 보잘 것 없던 지역이 현재는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개발로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 성남시로 일컬어지는 지역의 향토사적 가치와 정확한 해석이 뒷받침됐다고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소설가 정인택 씨와 함께 성남을 역사적, 지명적으로 재조명해봄으로써 성남의 과거와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길 기대해본다.

광주대단지는 이주민들에게는 고통을, 토박이들에게는 충격을 안겼습니다.
달랑 천막을 내주고 나중에 집을 짓든지 말든지는 알아서 하라니 이주민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겠지요. 한데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다 보니 땅값이 뛰었습니다. 브로커들이 농간을 부린 결과였는데, 자고 나면 부르는 값이 다를 정도였습니다. 토박이들로선 기가 막혔겠지요. 자기들이 땅의 주인이었을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모란개척단 단원들도 허탈했습니다. 단대천을 사이에 두고 그들이 개간한 땅은 시세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교할 수도 있었습니다. 광주대단지는 금싸라기, 자기네 땅은 개털. 
김창숙이 단안을 내렸습니다. 광주대단지 바로 밑에 또 다른 단지를 개척하자고.

하지만 지명 모란은 그대로였습니다. 모란마을을 모란단지로 표현을 달리했을 뿐. 모란개척단은 농민단체에서 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주식회사 모란개척단.
주식회사 모란개척단에서 하는 일은 부동산 분양사업이었습니다. 모란단지에 입주할 희망자를 모집, 그들에게 택지를 분양해 인구 250만을 수용할 거대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에 사무실을 차렸고요.
시급한 과제는 부지 확보. 김창숙은 현재 성남동, 하대원동, 여수동 일대 지주들을 설득했습니다. 분양이 시작되면 모란단지도 광주대단지처럼 금싸라기가 될 터이니 귀하 소유의 땅을 모란단지에 편입하시라.
대부분 협조적이었습니다. 손해 볼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란단지에 편입됐다고 해서 땅의 소유권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부지를 매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란단지 분양 광고를 신문지상에 떠억하니 실었으니.

김창숙이 군사정권 핵심부와 선을 대고 있었기에 착수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체국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란시장 근처에 우체국이 새로 생겼는데, 이름이 모란우체국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모란은 공식 지명이 아니었습니다. 모란시장 일대에 공식 지명은 하대원리. 따라서 하대원우체국이라야 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우체국은 공식지명 이외는 채택하지 않습니다.
모란우체국은 정상적인 경로로 개설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체신부장관이 김창숙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개설을 지시했고, 초대 우체국장으로 발령을 받은 사람은 체신부장관의 친동생이었습니다.
한데 왜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별 힘도 못 쓰는 우체국을?

모란우체국은 모란단지 프로젝트가 정부에서 공식으로 승인했다는 증거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분양 신청을 하라는 것입니다.
김창숙의 배포는 한껏 커졌습니다. 모란단지 기공식을 열면서 상공에 군용 헬리콥터를 띄우기까지. 행사는 성대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평생 가야 한 번 볼까말까한 구경거리였습니다.
당일 성남출장소 공무원들이 행사 진행 요원으로 동원됐습니다. 그것이 1973년 성남시가 발족할 때 ‘모란동’이 되지 못하고 ‘성남동’이 된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성남시청 공무원들이 ‘김창숙 측근’으로 몰릴까 싶어 지명 모란을 기피했던 것입니다.

1971년 5월 김창숙은 ‘모란단지사기분양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됐습니다. 사업이 흘러가는 형태를 볼작시면 필경 파탄으로 귀결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의도적인 사기극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기업 경영에 경험이 일천했고, 사업규모에 비해 손에 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나중에 감당을 못하게 되고 만 일.
그런데 김창숙과 모란개척단 단원들은,
“사람만 끌어 모으면 돈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돼.”
라고 여겼을 듯합니다. 광주대단지가 그랬거든요. 시행 주체였던 서울시에서 했던 일이라고는, 부지를 매입한 뒤 불도저로 깡그리 밀어붙인 것이 전부. 그리고는 서울시 철거민들을 트럭에 태워 이주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땅값이 뛰기 시작했고요.
허나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사람이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홍보에만 막대한 비용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여유 자금으로 모란단지 예정지에 땅을 매입하겠습니까. 분양대금은 들어오는 족족 빠져나가는 판국에.
정부는 피해자의 숫자가 엄청날까 걱정돼 서둘러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해자가 상당했습니다. 성남출장소는 그들을 달래기에 안간힘을 써 현재 수정구 산성동 일대에 입주할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1971년 8월 광주대단지 이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름 하여 광주대단지 소요사태.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 성남출장소 건물이 불에 그을렸습니다. 요행 당일 비가 내렸습니다. 덕분에 내부가 그을린 정도로 그쳤는데, 공무원들의 가슴에 상흔은 깊었습니다.
73년 성남시가 발족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습니다. 또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불안 초조 …….
그 불안감으로 하여 지명 모란은 공식적인 지위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척된 것을 기념한다는 괴상한 명분으로 성남동이 되었던 것.
필자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성남동은 모란동으로 개명하는 것이 옳다!
 
이번 주는 여기까지. 다음에는 탄리가 탄동이 되지 못한 내력을 살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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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성남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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