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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1.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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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기본적으로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뜻하지만, 이로부터 파생되어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목표 혹은 이상’을 꿈이라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갈매기의 꿈”, “꿈은 이루어진다”, “꿈을 먹는 젊은이”, “꿈 희망 미래”, “네 꿈에 미쳐라” 등등.
여기서 좀 삐딱한 생각 하나. 왜 간절한 목표나 이상을 ‘꿈’이라고 표현할까? 사실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지만은 않는다. 꿈꾸는 내내 무섭고 괴로운 경우도 있다. 꿈꾸는 동안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었더라도 깨어나 다시 돌아온 현실에 더욱 허망해지기도 한다. 꿈은 비현실적이고 허망한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부정적 의미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간절한 목표나 이상을 꿈이라 표현하는 것은 ‘절실히 원하지만 실상 그대로 이룰 가능성은 희박한 일, 어쩌다 이루어지면 그만큼 감격스러운 일’이라는 속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이라는 말의 부정적 용법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한껏 부풀어 올랐던 풍선이 한순간 펑 터져버렸을 때의 허탈함이 느껴진다. 비슷한 의미를 지닌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일생은 한낱 한숨 잠 속의 꿈과 같은 덧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좀 다른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고사성어에서도 꿈은 그저 멋대로 그려내는 각자의 생각을 뜻한다.
 
보다 본격적으로 꿈이라는 말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사례는 불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현세 삶을 허망한 꿈이라 한다. 지금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살아가는 현세 삶이 사실은 허황된 한낱 꿈에 불과하다고 한다. 허망한 꿈속인 줄 모르고 현세 삶을 실재인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무지無知)이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이고, 결국 이 꿈에서 환히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불교에서 현세 삶을 허망한 꿈이라 하는 것은 얼핏 들으면 대단히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입장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결코 현세 삶에 대한 허무적 회의나 부정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불교에서 현세 삶을 허망한 꿈이라 간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도록 유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잘못된 현세 삶을 부정하고 참다운 삶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왜 현세 삶을 잘못된 현실, 허망한 꿈이라고 파악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나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욕망과 집착의 굴레에 나 스스로 얽매여 고통 받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허망한 꿈이라 부정하는 것이다. 이때의 마음은 분별적인 마음이다. 모든 것을 상대적인 둘로 나누어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인식의 단초이자 근간은 ‘나’라고 하는 자기중심성이다. 자기중심성은 맹목적인 욕망을 분출시키고, 이로 인해 현세 삶은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과 고통의 삶으로 전개된다. 요약하자면 불교에서 현세 삶을 허망한 꿈이라 간파하는 것은 분별적 마음에 의해 이끌려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결코 본래의 참다운 삶이 아니기에 빨리 이 잘못된 꿈에서 환히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세 삶을 허망한 꿈이라 파악하는 것은 불교 전체에 일관하는 특징인데, 특별히 티베트 불교 전통의 ‘꿈의 명상’에서는 이 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잠과 꿈의 명상』, 텐진 완걀 린포체 지음, 홍성규 옮김, 정신세계사, 2003년, 310쪽
 
‘잠과 꿈의 명상’은 티베트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수행법이다. 잠과 꿈을 수행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게 된 데에는 “의식적인 마음이 주는 정보보다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정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 “꿈은 하루의 분주함과 깨어있을 때의 합리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제공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현실 삶에서는 합리적 의식이 작용하여 분별적 마음에 의해 이끌려 가는 나 자신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합리적 의식에 의해 나의 마음이 바로 참된 나라는 착각을 더욱 고착화한다. 반면 잠잘 때에는 분별적 마음에 의해 이끌리는 나의 모습이 합리적 의식의 제약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꿈의 명상을 통해 허망한 꿈속에 있는 현실 삶의 실상을 보다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 전통의 꿈 명상이 실제로 수행의 효과를 이룰 수 있을지의 논란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쨌든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현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삶, 분별적이고 분석적인 삶의 미명 아래 끊임없이 세상을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가치들로 편 가름하는데 익숙해 있다. 불교의 가르침, 특별히 티베트 불교의 꿈 명상은 아무 생각 없이 현실이라고 간주해왔던 삶의 모습을 완전히 뒤집어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잘못된 꿈에서 깨어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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